작년에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인상 깊게 읽어서 이미예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찾아보는데 마침 7월에 출간된 탕비실이 있었다. 소설집이 나닌 단편이 하나 실린 얇은 책이라 살까 말까 고민했었는데 몇 주 전 들렀던 중고 서점에 탕비실이 입고되어 있어서 데리고 왔다.
# 탕비실
표지 일러스트가 너무 예쁜 책.
뒷표지는 전부 형광 분홍색인데도 책이 부담스럽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진초록과 형광이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니...
표지 커버도 센스가 있는 게 보통은 안쪽면이 단색으로 되어있거나 커버 날개에 작가님의 정보가 적혀있는데 탕비실은 표지를 마치 포스터처럼 크게 인쇄해서 커버로 썼다.
# 목차 및 간단 리뷰
탕비실 빌런으로 꼽히는 이들을 각각의 회사 직원들에게 투표받아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을 차출해서 모은 뒤, ' 탕비실 '이라는 리얼리티 방송을 찍는 7일을 우리(독자)가 보게 된다. 빌런들은 각자 자신이 빌런으로 꼽힌 이유를 가명으로 사용하는데 우리는 ' 얼음 ' 의 시선으로 다른 이들을 보게 된다.
이 프로그램에는 룰이있다. 각자의 공간에서 평소와 같이 일을 하되, 탕비실에는 하루에 60분만 머무를 수 있는 것. 그리고 이 5명 중에 가짜 빌런(빌런이 아닌 사람)이 포함되어 있어 그 사람을 찾아내는 것이다. 상금이 있는데 7일간의 합숙이 끝날 때 즈음 가짜 빌런을 지목한 사람의 수가 많을수록 각자에게 떨어지는 상금은 적어진다.
(여기서부터 리뷰이고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어요!) 단편이라 별 생각없이 얼음의 시선으로 누가 가짜 빌런일지 추리하며 읽었다. 설렁설렁 추리를 하면서 볼 수 있는 정도인데 이들이 가짜 빌런을 알아내려면 ' 규칙 '을 어겨야 하는데 그 규칙이란 탕비실에서 다른 사람에게 폐가 될만한 행동을 하는 것.(민폐 행위) 그리고 독특하게 자신에 대한 힌트도 볼 수 있는데 다른 사람의 힌트를 볼 때에는 한 장이지만 나의 힌트를 보려면 두 장을 사용해야 한다. 나도 그렇고 얼음도 ' 나 스스로에 대한 힌트를 왜 보지? ' 하고 의아했는데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얼음의 심경의 변화가 있었다. 자신에 대한 힌트를 보게 되는데 그때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한순간에 팔에 소름이 쫙 끼쳤다... 공포물인 줄... 남들이 보는 얼음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힌트였는데 우리가 평소에도 많이 보는 문장이 적혀있다. 난 그 문장이 그렇게 무서운 문장인줄은 이 책을 보고 알았다...
사실은 슬렁슬렁 그저 그렇게 읽히길래 3.5점 줘야지 하고 있다가 위의 저 구간과 거의 마지막 구간을 보고 단편을 이렇게 쓰셨다고...? 감탄하며 4.5점으로 기록하게 됐다. + 작가의 말에 우리 모두는 이들을 조금씩 닮아있다는 문장이 적혀있는데 ' 아뇨...작가님... 얼음은 아닌 것 같아요... ' 하고 부정했다. 정말 얼음의 일부분이 나에게 있을까?ㅠㅠ
# 기억에 남는 문장들
P. 122
" 감점을 너무 크게 당하면 가산점은 있으나마나 한 거예요. "
P. 139 - 작가의 말 -
우리 모두는 이들을 조금씩 닮아있다. 삶에서 내가 정할 수 있는 건 삶을 어떻게 대하느냐뿐이라고 했던가. 싫어하는 대상의 기분을 한 번쯤은 상상해보는 것. 나는 단지 그 정도로 싫음을 대하기로 했을 뿐이다. 그러고 나서 늘 토하듯 뿜어냈던 싫음의 감정이 얼굴은 찌푸려질지언정 조금은 소화가 되었다고, 단지 그 말을 전하고 싶었다.
살까 말까 고민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과는 결이 다른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