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파랑 _ 천선란 장편소설 / 저도 당신이 그냥 좋아요 / 기억에 남는 문장들

천선란 작가님 하면 따라붙는 키워드 로봇 3부작. 첫 번째가 오늘 이야기할 천 개의 파랑이고 두 번째가 랑과 나의 사막, 마지막 세 번째가 뼈의 기록이다. 벌써 작가님의 책을 두 권 읽었는데 로봇 3부작은 이상하게 피해 갔다. 천 개의 파랑을 제일 먼저 읽고 싶었는데 가장 유명한 만큼 기대가 되어 좋아하는 반찬을 마지막에 먹듯 아꼈다.

 

이끼숲 _ 천선란 연작소설 / 따뜻하게 서로를 보듬고 구원하는 SF 소설 / 기억에 남는 문장들

게을러서 아직도 7월에 읽은 책들을 포스팅하고 있는 나... 매달 어떤 책을 가장 좋아했는지 결산하는 포스팅도 올리고 싶은데 쓸게 너무 많아서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벌써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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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선란 작가님의 소설 중 천 개의 파랑만 알고 있는 분들께 이 책은 꼭 소개하고 싶다. 별점을 5점 이상 마구 주고 싶은 소설 ( •͈ᴗ•͈)◞

 

# 천 개의 파랑

작가님은 문장은 정말 신기하다. 문장에 온도가 묻어있는 것 같다. 이게 바로 작가님의 시그니처 언어가 아닐까? 분명 멋을 낸 단어와 문장이 아님에도, 우리가 평소 쓰는 단어들을 조합했을 뿐인데도 마치 처음 들어본 것처럼 벅차다. 누군가가 하는 일이 쉬워 보인다면 그 사람이 정말 잘하는 거랬는데 글쓰기도 그런 거겠지.

천 개의 파랑

2019년에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은 소설이니까 벌써 출간된지 5년이 지났다. 왜 이 이야기를 꺼냈냐면 제일 후회하는 게 천 개의 파랑 리커버를 못 산 것 때문... 두 가지 버전이 있던데 한정판이라 가끔 검색해서 보면서 눈물 흘리는 중... 내가 그 표지 디자인한 출판사였으면 자랑하고 싶어서 계속 팔 거 같은데, 뭐... 한정판인 물건들은 이유가 있는 거겠죠...

 

# 목차 및 간단 리뷰

얼마나 인기가 많았으면 웹툰, 뮤지컬 등의 2차 창작이 나왔을까,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기수의 역할을 하기 위해 인간보다 작고 가볍게 만들어진 로봇 ' 콜리 ' 와 파트너인 말 ' 투데이 ' 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경마 경기를 뛰는 중, ' 하늘이 푸르다 ' 는 생각을 하며 낙마하게 된다. 하지만 콜리는 투데이가 힘겨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투데이가 망가질까 봐 겁이 났던 거다. 그 결과 자신의 골반과 하반신이 전부 부서졌으며 더 이상 기수로서의 효용가치가 사라졌다.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시간을 기수방에서 보내고 싶지 않은 콜리의 부탁으로 업체가 자신을 수거하러 오기 전까지 마방 건초 더미 위에 널브러져 하늘을 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소년 연재. 로봇 분야에 재능이 있고 로봇을 좋아하는 연재는 전재산 80만 원을 털어 하반신이 부서진 콜리를 사 오게 된다.

여기까지가 콜리와 연재가 만나게 된 이유이자 이들의 따뜻하고 찬란한 이야기의 서막이다.

 

사랑을 아는 로봇, 콜리. 하늘을 사랑하고 투데이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며 주변 이들과의 소통을 통해서 사랑을 보여준다. 마음이랄 게 없는 로봇도 사랑을 배우고 감정을 나눈다. 다른 이들의 행복을 빌고 자신의 행복을 표현할 줄도 안다. 투데이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콜리의 마음을 전부 알 수는 없겠지만 그건 아마도 사랑이 아닐까.

 

# 기억에 남는 문장들

P. 28
" 투데이와 달리는 순간만큼은 저도 호흡하고 있어요. 투데이의 호흡에 맞춰서···. 이것도 비유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

P. 69
" 하늘이 그곳에서 그렇게 빛나는데 어떻게 바라보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

P. 83
삶이 이따금씩 의사도 묻지 않고 제멋대로 방향을 틀어버린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벽에 부딪혀 심한 상처가 난다고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방향을 잡으면 그만인 일이라고, 우리에게 희망이 1%라도 있는 한 그것은 충분히 판을 뒤집을 수 있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P. 233
" 행복만이 유일하게 과거를 이길 수 있어요. "

P. 261
" 당연하지. 살아간다는 건 늘 그런 기회를 맞닥뜨린다는 거잖아. 살아있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기라도 하지. "

P. 286
" 그렇다면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겠네요. "
콜리가 보경을 향해 조금 더 몸을 틀었다.
" 멈춘 상태에서 빠르게 달리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많은 힘이 필요하니까요. 당신이 말했던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과 같지 않을까요? 행복만이 그리움을 이길 수 있다고 했잖아요. 아주 느리게 하루의 행복을 쌓아가다 보면 현재의 시간이, 언젠가 멈춘 시간을 아주 천천히 흐르게 할 거예요. "

P. 314
" 당신도 저를 그냥 데리고 온 건가요? 이유 없이요? "
" 응, 그냥 데리고 왔어. "
" 고마워요. 저도 당신이 그냥 좋아요. "

P. 338
" 문명이 계단을 없앨 수 없다면 계단을 오르는 바퀴를 만들면 되잖아요. 기술은 그러기 위해 발전하는 거니까요. 나약한 자를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

콜리 말을 너무 다정하게 해... 다정하고 따뜻한 소설이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천 개의 파랑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