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를 읽고 다음 작품도 한강 작가님의 소설을 읽고 싶어 흰과 채식주의자를 고민하다가 우선 흰을 먼저 구매했다. 아직 한강 작가님이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이라 품절이 있지는 않았는데 이후 후회했다. 채식주의자 진작 사둘 걸, 하고...
# 흰
흰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라 그런지 표지에는 흑과 백,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색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구매한 책은 개정판 흰이길래 구판을 찾아보니 구판은 제목에 걸맞게 하얀 천이 표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둘 다 책 자체의 디자인이 깔끔하고 예뻤다.
그리고 이 책만의 특징이 있다. 속지가 꽤 두껍고 빳빳하다는 건데 처음 책을 펴봤을 때 조금 신기했다. 종이가 두껍다 보니 페이지에 비해 책이 두꺼운 편이다.
# 목차 및 간단 리뷰
' 나 '가 태어나기 전, 먼저 나온 아기가 있었다. 태어난 지 두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그 두 시간 남짓 동안의 아기와 엄마의 이야기가 담겨있으며 이후에는 ' 나 '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소설이라기에는 너무 시 같았다. 조금 긴 시. 흰 것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예를 들면 파도,라는 소제목 아래에 소설이라기에는 짧은 문장들이 적혀있는 식인데 나처럼 이걸 모르고 구매한다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책을 열어보지는 않고 앞뒤 표지를 보고 구매하거나 온라인에서 소개글을 몇 줄 읽고 구매하는 편이라...ㅠㅠ 나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한강 작가님의 다른 책들보다 호불호가 강한 것 같다. 짧아서 읽기에는 수월했지만 문제는 단편보다도 짧은 글들이 묶인 책 + 시적인 표현 때문에 나에게는 조금 안 맞았다.
# 기억에 남는 문장들
P. 59
삶은 누구에게도 특별히 호의적이지 않다. 그 사실을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이마를, 눈썹을, 뺨을 물큰하게 적시는 진눈깨비.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걸을 때, 안간힘을 다해 움켜쥐어온 모든 게 기어이 사라지리란 걸 알면서 걸을 때 내리는 진눈깨비.
P. 64
대체 무엇일까, 이 차갑고 적대적인 것은? 동시에 연약한 것, 사라지는 것,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이것은?
P. 81
어떤 기억들은 시간으로 인해 훼손되지 않는다. 고통도 마찬가지이다. 그게 모든 걸 물들이고 망가뜨린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P. 97
자신을 버린 적 있는 사람을 무람없이 다시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그녀가 삶을 다시 사랑하는 일은 그때마다 길고 복잡한 과정을 필요로 했다.
P. 99
사라질 - 사라지고 있는 - 아름다움을 통과했다. 묵묵히.
P. 129
당신 올 수 있다면 지금 오기를. 연기로 지은 저 옷을 날개옷처럼 걸쳐주기를. 말 대신 우리 침묵이 저 연기 속으로 스미고 있으니, 쓴 약처럼, 쓴 차처럼 그걸 마셔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