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이것만은 꼭 본다, 하는 프로그램이 있을 거다. 나는 평소 용감한 형사들, 꼬꼬무를 꼬박꼬박 챙겨본다. 범죄나 역사, 과거를 보다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오늘 소개할 책이 이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배경인 한강 작가님의 ' 소년이 온다 '를 가지고 왔다.
# 소년이 온다
10주년 한정으로 나온 양장본이다. 클럽 창비 1기에 가입하고 원하는 도서를 선택할 수가 있었는데 소설 중에서는 소년이 온다를 선택했다. 클럽 창비 북클럽 1기의 웰컴 키트가 궁금하다면 아래의 포스팅을 누르면 구경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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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민음사, 문학동네의 북클럽을 전부 놓치고 내년을 기다리고 있는데 창비에서 ' 클럽창비 '라는 이름으로 북클럽을 시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신청 기간 전에 유튜버나 창비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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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장인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표지의 들풀...이라고 해야 하나? 저 푸르고 얇은 풀이 소년이 온다의 한 챕터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바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어린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수십 년이 지난 후 과거를 회상하며 독백하는 장면. 이 부분은 밖에서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서 집에 와서 읽었는데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 너무 슬픈데 어머니의 독백을 끊고 싶지 않아서 턱 끝에 눈물을 매달고 읽었었다.
# 목차 및 간단 리뷰
위에서도 말했지만 평소 범죄, 역사에 관련한 것을 많이 찾아서 영상을 틀어놓고 보는 편이라 유튜브에서도 공중파 프로그램에서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많이 봤지만 글이 주는 충격과 공포, 그리고 고통은 또 다른 경험이었다. 특히 이 소설은 자체의 몰입도가 엄청나다. 사람이 같은 사람에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는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예전에 최진영 작가님의 ' 오로라 '라는 단편 소설을 읽고 화자가 스스로를 ' 너 '라고 지칭하는 게 너무 헷갈렸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 소년이 온다 '의 첫 번째 챕터도 주인공 동호가 ' 너 '로 지칭되고 있다. 그런데도 잘 읽혔다. 단편과 장편의 차이인지 문체의 차이인지는 모르겠다.
왜 영상으로 볼 때와 글로 읽을 때의 충격이 다른지를 생각해 봤는데 아마 이 소설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그 속의 죽어가던 사람들 개인의 삶을 보여주기 때문인 것 같다. 이미 죽은 이들의 영혼은 이후에 어떻게 되는지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여전히 내 기억에 남아있다.
아주 적나라하고 내밀하게 마음 깊숙히 꽂히는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분노와 슬픔이 몸속에 빼곡하게 차올랐다. 치료를 받더라도 흉터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모든 분들이 더 이상의 아픔은 없었으면 한다.
* 눈물이 많은 편이라면 꼭 집에서 읽기를 추천하는 책이다. *
# 기억에 남는 문장들
P. 100
얼굴은 어떻게 내면을 숨기는가, 그녀는 생각한다. 어떻게 무감각을, 잔인성을, 살인을 숨기는가, 그녀는 생각한다.
P. 103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하고 물이 나옵니까.
P. 124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P. 129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P. 151
선생은 압니까,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P. 156
카, 카스테라가 제, 제, 제일 먹고 싶어요. 사, 사이다 하고 가, 같이. 외사촌이 죽던 이야기를 하면서도 울지 않던 그 아이는, 뭐가 먹고 싶으냐는 말에 주먹으로 눈언저리를 문지르며 대답했습니다.
P. 174 - 175
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 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P. 236
알 수 없다이, 그날은 왜 내가 이름 한자리 못 불러봤는지. 입술이 달라붙은 사람맨이로, 쌕쌕 숨만 몰아쉼스로 뒤를 밟았는지. 이번에 내가 이름을 부르면 얼른 돌아봐라이. 대답 한자리 안 해도 좋은 게, 가만히 돌아봐라이.
P. 252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P. 272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의 다른 이름이었다.
P. 280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