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치새가 사는 숲 _ 장진영 장편소설 / 표지에 단단히 속은 소설(+결말) / 기억에 남는 문장들

부산에 놀러 갔을 때 독립서점 ' 주책공사 '를 갔었다. 꼭 한 권을 사오리라, 생각하고 구경을 하는데 읽어보고 싶었던 책 두 권이 눈에 띄었다. 바로 지금 포스팅하는 치치새가 사는 숲과 곧 포스팅할 여름과 루비. 온라인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책을 여행 왔다는 이유로 덥석 구매했다. 두 책 다 내용은 모르고 있었다. 사람들의 반응이 있을 만큼 인기가 좋았고, 책 표지가 너무 나를 꼬셨다...

 

# 치치새가 사는 숲

7월부터 무려 두 달을 나의 장바구니 속에 있던 책. 너무나 여름 같은 표지라서 여름이 끝날 때 즈음에 읽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뒷면을 보고 불행한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애틋함을 담은 소설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중간에 읽고 충격받아서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찾아보기도 했다. 호불호가 엄청 갈리는 소설일 수밖에 없는 게 이 책에는 그루밍 성범죄가 나온다. 그런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을 했으면 이렇게 놀라진 않았을 텐데 아무런 내용을 모르고 봐서 너무 놀랐었다.

 

# 목차 및 간단 리뷰

그루밍 성범죄. 그것도 미성년자를. 그 내용이 제법 적나라하게 나온다. 게다가 결말도 영 찜찜한 게... 만약 이런 이야기를 꺼린다면 이 책은 추천하지 않는다.

 

읽을 때는 정말 충격 받았었는데 책을 덮을 때 즈음엔 그래, 이런 이야기도 분명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범죄의 한 종류이니 나쁜 책은 아니다, 싶었다. 그리고 어른들의 무심함에 분노했다. 이 아이는 무심함이라는 그늘에서 폭력적인 어둠을 집어삼키며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결말이 궁금한 사람들이 많아 추가하자면 ' 나 '의 임신을 누구보다 먼저 알게 된 달미 어머니의 신고로 차장과의 관계가 밝혀진다. 그럼에도 관심 없는 가족들을 보며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 나 '의 언니는 부모의 집이 넘어가게 생기자 차장에게 합의금 4,000만 원을 받아 그 집을 지켜낸다. 하지만 그건 ' 나 '를 위한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다. ' 나 '가 얼마나 애정에 목말랐는지, 그래서 고작 몇 번 만난 차장에게 들은 ' 사랑해 '라는 말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을지...

 

심지어 차장이 지어준 치치림은 꽁치 김치 조림의 뒷글자에서 따온 거였다... 하...

 

별점을 낮게 준 이유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책의 디자인이 큰 요인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어야 할 내용을 멋도 모르고 가볍게 여름 이야기를 읽으려고 열어봤다가 데었기 때문이다.

 

# 기억에 남는 문장들

P. 33
벅차고 비참한 기분이었다. 아리송한 기분이었다. 울고 싶었다. 눈물은 슬플 때가 아니라 헷갈릴 때 나곤 하니까.

P. 76
사람들은 미안할 때 화를 낸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미안하다고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하는 사람도 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너무 뻔뻔했다.

P. 80
나는 불행한 기억을 사랑했다. 불행에 집착했다. 마음속 보석함에 불행한 기억을 모았다. 내 사랑은 악취미였다.

P. 85
밥은 공짜인 줄 알아? 엄마의 밥은 공짜가 아니었고 달미 어머니의 밥은 공짜였다.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수 없었다. 불공평했다. 자식에 대한 사랑에도 평준화가 있는 걸까. 어떤 엄마가 자식을 많이 사랑하면 어떤 엄마는 딱 그만큼 덜 사랑하게 되는 걸까. 엄마가 아빠한테서도 밥값을 받을지 궁금했다.

P. 127
행복과 불행은 배치고사를 봤다. 평균을 위해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

P. 141
소중한 것일수록 감추어야 한다. 치치새가 사는 숲. 치치림. 치치야, 그래서 치치새는 찾았니?

문장들 대부분이 혼자서 행복과 불행을 깨우치는 외로운 아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