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 내 최애 작가님. 이 책을 읽는 시점에서는 ' 이끼숲 ' 다음으로 이제 겨우 두 권째 읽는 거긴 하지만, ' 이끼숲 '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최애가 되어버린... 따뜻한 SF 소설을 찾고 있다면 ' 이끼숲 ' 추천!
이끼숲 _ 천선란 연작소설 / 따뜻하게 서로를 보듬고 구원하는 SF 소설 / 기억에 남는 문장들
게을러서 아직도 7월에 읽은 책들을 포스팅하고 있는 나... 매달 어떤 책을 가장 좋아했는지 결산하는 포스팅도 올리고 싶은데 쓸게 너무 많아서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벌써 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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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랜드
작가님 책 중 이미 천 개의 파랑을 읽으려고 주문해 둔 상태였다. 그리고 약속 시간이 비어 잠깐 도서관에 갔는데 이끼숲은 읽었고, 천 개의 파랑은 주문했으니까 작가님의 다른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하고 고른 게 노랜드였다. 단편 소설집이었는데 가장 앞에 있던 [ 흰 밤과 푸른 달 ]을 보고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했다.
도서관에서 읽은 책은 양장이었는데 배송 온 책은 반양장이었다. 알고 보니 노랜드 초판 한정으로 양장본이 나온 거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노랜드 10주년에도 리커버 내주시리라 멋대로 기대하기🙄
# 목차 및 간단 리뷰
챕터 별로 전부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러면 포스팅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마음에 든 챕터를 이야기 하자면 위에서부터 [ 흰 밤과 푸른 달 ], [ 옥수수밭과 형 ], [ 제, 재 ]이다.
[ 흰 밤과 푸른 달 ]은 밤이 찾아오지 않는 지구에 크람푸스(반은 염소, 반은 악마)라는 외계종족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 외계종족에 맞서 싸울 수 있게 몇몇의 인간들에게 늑대의 유전자를 심게 되는데 문제는 4년 2개월의 전쟁 후 크람푸스가 사라졌다는 거다. 그러자 인류는 늑대의 유전자를 가진 이들이 자신에게 해를 입힐까 걱정하고 그들을 두려워한다. 어느 한쪽에서는 그들을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다 같이 늑대의 유전자를 몸속에 심어 진화의 길을 걷자고 한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늑대의 유전자를 심은 이들(=대원들)이 더 넓은 세계. 즉, 우주로 나가 싸우고 싶다며 자신들의 의견을 말한다. 그렇게 우주로 나가기 전 대원들과 가족들이 만날 수 있는 자리에서 가족이 없는 명월을 친구 강설이 찾아가게 되는데...
[ 옥수수밭과 형 ]은 한 번 듣거나 읽으면 절대 잊지 않는 자폐를 가진 동생 ' 푸코 ' 의 시점이다. 자신의 형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푸코는 형이랑 옥수수밭에서 자주 놀곤 했다. 그렇게 사랑하는 형이 백혈병에 걸려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형이 죽은 지 이틀이 되던 날 슬퍼하는 푸코는 옥수수밭에서 형을 만나게 된다. 형은 정말 모든 게 그대로였다. 다만 발목에 새겨진 9라는 숫자만 제외하면.
[ 제, 재 ]는 해리성 인격 장애를 가진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한 사람의 몸에 있기 때문에 서로를 구분하기 위해 제와 재로 이름을 나누어 부른다. 우리의 시점은 ' 제 '이지만 이 소설 속 실질적인 메인 인격은 ' 재 '이다. 재는 어린 시절부터 똑똑해서 범상치 않은 천재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는데 그래서인지 그 누구도 제가 몸을 차지하고 있는 시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 선 '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선은 제와 재의 동생으로 제를 좋아하며 재를 싫어한다. 하지만 연구, 실험, 공부 등으로 바쁜 재가 몸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 각성제를 먹으면서까지 버티는 바람에 제가 깨어있을 수 있는 시간은 터무니없이 짧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깨어나서 이상함을 느낀다. 바로 치우지 않은 재의 흔적들. 재는 자신이 잠들기 전, 항상 자신의 물건을 정리해 두는 편인데 그렇지 않았던 거다. 알고 보니 원치 않게 잠이 들어버렸고 그 덕에 제는 재가 자신을 없애려고 이때까지 연구와 실험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진짜 작가님은 천재가 아닐까...?
[ 흰 밤과 푸른 달 ]에서 언제나 웃는 명월을 보고 최근에 읽은 ' 대도시의 사랑법 ' 이 떠올랐다. 화를 내야할 때에 크게 웃어버리고야 마는 주인공을. 명월도 웃는다. 괴롭고 외롭고 누군가가 나를 도와줬으면, 하는 상황에서조차도. 행복과 웃음이 늘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 제, 재 ]. 보조 인격의 시점이라니... 게다가 주인공인 제가 너무 착해서 더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이번에 포스팅하면서 다시 읽어봤는데 너무 좋은 소설이다. 나를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세상은 살만하다, 고 느끼게 해주는 소설. 그리고 [ 옥수수밭과 형 ]은 여럿이서 책을 읽고 서로 의견을 나누기에 좋다. 각자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음... 천선란 작가님의 단편이 궁금하다면 노랜드 추천!
# 기억에 남는 문장들
인덱스 범벅. 천선란 작가님 책만 읽으면 이렇게 된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이 아니더라도 작가님의 언어가 따뜻해서 (,,ᴗ ᴗ,,) ⁾⁾
⌜흰 밤과 푸른 달⌟
P. 23
자신이 지키기 위해 똑똑해진 것처럼 명월은 지키키 위해, 살아남기 위해 강해졌다는 걸 잊고 있었다.
P. 27
- 나는 네가 부러워. 너 진짜 잘 안 웃어. 상대방의 몇 살이든, 어떤 사람이든 상관 안 하고 네 기분에 따라 행동하잖아.
- 욕처럼 들리는데.
- 진짜 부러워서 그래. 나는 나도 모르게 웃고 있는 내가 가끔 징그러워.
P. 35
강설도 안다. 명월이 떠나기 전 지구에서 마지마긍로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자신이라는 걸. 스승님과 원장님, 그리고 명월이 살아오며 숱하게 만나고 도움 준 사람들을 다 붙여도 자신 한 명을 이기지 못할 거라는 걸.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명월이 괘씸해졌다. 명월도 강설에게 다를 바 없는 존재인데. 곁에 있는 사람을 다 붙여도 명월 한 명을 못 이기는데.
P. 54
강설은 큰일 났음을 느꼈다. 삶 구석구석에 명월이 있음에.
P. 55
" 늑대는 귀소본능 같은 게 있다며. 그래서 죽기 전에 기어들어온다는데 너도 죽기 전에 기어들어와. 여기서 죽어. "
⌜바키타⌟
P. 78
그러니까 문명의 인간은 저에게 ' 가 '라고 하고 있었습니다.
' 들키지 말고 가. '
' 그냥 가. '
' 어서 가. '
' 빨리 가. '
⌜푸른 점⌟
P. 86
"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순간이 오겠지. 정말 언젠가 네가 그렇게 끄트머리이자 시작점인 곳에 서게 된다면 네가 믿는 것을 잃지 않기를 바라. 네가 믿고 있는 것이 답이야. 그걸 잃지 마. 가끔은 진실보다 믿음이 더 중요하니까. "
P. 103
[ 폭동은 절망에서 옵니다. ]
" 폭동은 희망에서 와. "
⌜옥수수밭과 형⌟
P. 117
" 형이 상상해봤는데, 만약 푸코랑 다르게 생긴 애가 본인이 푸코라고 하면서 푸코의 기억과 똑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그 애를 푸코라고 생각할 거 같아. 사람이든 로봇이든 강아지든 기억이 같다면. "
P. 119
부모님이 불쌍하면서도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장례도 치르지 않는 것일까. 인사하지 않으면 이별은 유예되니까.
⌜제, 재⌟
P. 151
내가 재 할게, 너는 제 해. 헷갈리잖아.
우리만 알아볼 수 있는 거야.
재미있지 않겠어?
나는 그 애가 남긴 쪽지를 보고 좋아했다. 그것이 나를 뺏는 이름인 줄도 모르고, 나는 내게 이름이 생겼다고 좋아했다. 애초에 나도 재였는데.
P. 152
아무도 나를 반겨주지 않았지만 그래도 깨어있는 게 좋았다.
P. 157
' 그냥 재가 유별나게 빠르고 특별한 거지 네가 못한 게 아니야. 너는 억지로 재의 속도에 같이 얹혀살고 있으니까 부족하다고 느끼는 거지. 네가 재의 속도에 맞춰주고 있는 거잖아. 그러니까 당연히 버겁지. '
P. 161
" 그렇지만 사람들은 나를 원하지 않아.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재야. 내가 아니라. 재가 죽고 나만 남았다는 걸 알면 모두가 슬퍼할 거야. 좌절할 거야. "
" 그게 뭐가 중요해? 나한테는 네가 필요해. "
⌜이름 없는 몸⌟
P. 198
사실 뭐든지 좋았다. 네가 어떤 어른이 되건 나도 네 옆에서 어떤 어른이라도 되어 있고 싶었다.
P. 253
우리는 강하게 태어났지만 악하지 못했다. 강하다는 것은 악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알고 있었다. 악했다면 너는 네 아비를 찔렀겠지만, 너는 강했기에 버텨서 살아남았다. 세상을 일부러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모든 상황을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가끔은 그게 미칠 듯이 억울했지만, 그래서 ' 차라리 네가 악했다면 '이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했지만 나는 네가 악하지 않아서 좋았다. 너는 정말이지 강해서 멋있었다.
⌜-에게⌟, ⌜우주를 날아가는 새⌟는 필사한 문장 없음.
⌜두 세계⌟
P. 334
남들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그 애에게도 길이 될 수는 없었다.
P. 351
유라야, 나는 너한테 모든 걸 말하고 싶지 않아. 네가 나를 억지로 이해하려는 그 모든 과정이 내게는 폭력이니까. 그러니까 나에 대해 다 안다는 식으로 떠들지 마.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
P. 359
인간은 끊임없이 상황에 맞게 변하고, 타인에 의해 규정되며 그렇게 타자에게 자신을 빼앗기니까. 그래서 타인의 평가에 그토록 예민하게 되죠. 그게 자신이 될 테니까.
P. 410
죽더라도 여기에서 죽고 싶었어. 돌아가고 싶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