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택배로 왔다 _ 정호승 시집 / 창비시선

소설만 가득한 내 블로그에 간간히 얼굴 비추는 시집과 에세이... 오늘은 그중 시집이다. 클럽 창비에서 시를 한 권 선택할 수 있었는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과 고민하다가 슬픔이 택배로 왔다를 골랐다.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도 다음에 읽어보고 싶다.

 

# 슬픔이 택배로 왔다

역시 시집은 제목부터가 너무나도 시선을 사로잡는... 💙 창비 시선 시리즈의 시집은 처음 읽어본다.

밤의 공원, 가로등이 빛을 내고 있어 전반적으로 푸르게 어두운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 목차 및 간단 리뷰

역시 시집은 특성상 목차가 길다.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시집은 뭐랄까... 각 잡고 읽기보다는 언제나 몇 페이지씩, 혹은 목차에서 마음에 드는 제목을 보고 페이지를 넘기며 읽는 게 좋은 것 같다. 나는 일단 순서대로 안 읽으면 왠지 모르게 찜찜해서 그러지는 못했지만... 한 번 주욱 읽고 인덱스를 붙여둔 것을 다시 읽기는 했다.

 

아직 시집의 재미를 알지는 못하지만 좋은 시들은 다시 읽고 싶을 때가 있기에 내가 좋았던 시들을 아래에 적어두었다. 中이라고 쓰인 것은 일부만 발췌했다.

 

# 기억에 남는 문장(시)

낙곡 中

첫눈이 내리고 무서운 겨울이 오기 전에
내가 너를 다시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난여름 내가 너를 위해 견디며 익어갔기 때문이다.
마음이 가난해지면

마음이 가난해지면 지옥도 나의 것이다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마음이 가난해지면
비 온 뒤 지옥에 꽃밭을 가꾸기로 했다
채송화 백일홍 달맞이꽃을 심어
마음이 가난해질 때마다 꽃 한 송이 피우기로 했다
감나무도 심어 마음이 배고플 때마다
새들과 홍시 몇 개는 쪼아 먹기로 했다

마음이 가난해지면 지옥의 봄날도 나의 것이다
지옥에 봄이 오면 당신을 사랑할 수 있다기에
죽어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기에
지옥에 텃밭도 가꾸기로 했다
상추 고추 쑥갓 파 호박을 심어
호박잎에 저녁별을 쌈 싸 먹을 때마다
마음은 더욱 가난한 흙이 되기로 했다
흙을 뚫고 나온 풀잎이 되기로 했다
찻잔을 들고 中

당신을 속이는 일이
나를 속이는 일인 줄도 모르고
내 일생은 당신을 속이는 일로 무척 바빴네
만리포 中

너는 성난 파도의 그리움으로 달려오라
낙법 中

내 존재를 다하여
나는 가난한 당신의 사랑이 필요했다
당신의 그물 中

그동안 당신의 그물에 걸리지 않으려고 도망쳐 온 것이 내 삶이라면
결국 당신의 그물에 걸려 파닥거리는 것이 내 죽음이라면
당신은 이제 그물에 걸린 죄 많은 나를 버리지는 말아야 한다
약속할 수 없는 약속 中

이제 당신을 사랑하지도 증오하지도 미워하지도 않겠습니다
그래도 죽을 때까지 미워할 사람이 단 한 사람은 있어야 외롭지 않을 것 같아
당신을 영원히 미워하겠습니다
헌신짝 中

당신은 나를 버림으로써 영원한 이별이 완성된 줄 알지만
나의 이별은 만남을 위한 기다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