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포털 사이트에서 이것저것 검색하고 구경하다가 이 책이 드라마화가 확정되었다는 뉴스 기사를 보았다. 이런 기사를 보면 꼭 원작을 읽어보고 싶다. 그 길로 곧장 책을 주문했다. 사실 집에는 아직 펴보지도 않은 이슬아 작가님의 칼럼집 ' 날씨와 얼굴 ' 이 있었다. 현재에는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두어 편씩 병렬 독서 중이지만 이때에는 아니었으니 가녀장의 시대는 내게 이슬아 작가님의 첫 번째 책이었다.
#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작가님에게도 첫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제목과 표지가 강렬해 더욱 호기심을 자극시켰다. 요즘 이 단어를 너무 많이 봐서 순간적으로 가부장이라는 단어를 잊기도 했다...
이 책은 마술적 리얼리즘이 보이는 소설이다. 극적인 정도는 아니지만 작가님과 그 주변의 실제 인물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작가님의 인생을 엿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작가님의 소설과 칼럼집을 읽어보면 확실하고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이슬아 작가님은 늘 소외된 약자들의 목소리, 생명을 향한 존중, 그리고 만연한 차별에 목소리를 높여 보다 많은 이에게 알리려고 노력한다. 이 소설에도 그런 작가님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 목차
장편소설이지만 이렇게 잘게 나누어져 있어 진득하게 읽기에 시간이 없거나 너무 긴 호흡은 집중력이 부족하다면 더욱 추천한다. 한 챕터당 5-10장 사이라 편하게 읽기 좋다. 인물들 간의 대화나 그들의 행동을 눈으로 좇다 보면 끝에 가서는 꼭 가족이 된 것만 같아 책이 끝나는 게 아쉽다.
# 기억에 남는 문장들
P. 98
각자 다른 것에 취약한 이들이 서로에게 의지한 채로 살아간다.
P. 108
한 고생이 끝나면 다음 고생이 있는 생이었다. 어떻게 자라야겠다고 다짐할 새도 없이 자라버리는 시간이었다.
P. 142
남이 훼손할 수 없는 기쁨과 자유가 자신에게 있음을 복희는 안다.
P. 172
이 일을 매일 반복해온 노동자들이다. 반복해서 일해도 실수할 수 있다.
P. 221
복희는 아침마다 위스키 탄 커피를 즐겨 마신다. 위스키의 평균 도수는 45도다. 그렇게 센 독주도 커피랑 섞어 마시면 왠지 술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독주를 마시면서 얼렁뚱땅 시작되는 아침을 그는 좋아한다.
P. 261
" 나도 친절한 사람이 좋아. 하지만 친절은 덤 같은 거예요. 당연하게 요구할 수는 없어. "
P. 272
" 근데 흔들리니까 좋지, 엄마? "
" 응. 뭔가 막 배우는 기분. "
P. 280
" 남자를 만날 거면, " ··· " 너를 존경할 줄 아는 애를 만나. "
···
" 보통은 나보고 존경하라고 하던데. 남자를요. "
" 너는 누구든 잘 존경하잖아. "
웅이는 그런 식으로 에둘러서 표현한다. 실은 내가 너를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가녀장의 시대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나는 그 힘이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