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_ 최진영 소설 / 기억에 남는 문장들

문득 블로그의 포스팅을 멈추었다는 것보다,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들의 기록을 외면하는 것만 같아 올려보려고 한다. 읽은 책을 기록하고, 나의 감상을 짧막하게 남기는 용도라 줄거리를 자세히 설명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필사한 문장을 이 포스팅에도 옮겨적을 건데 그게 스포가 될 수도 있다. 그런 것이 괜찮으시다면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어쩌면 이런 아날로그적인 것들이 여전히 필요하다. 세상이 하루가 무섭게 발전해나가더라도 말이다. 이 소설은 작년, 태국에 여행가기 전 알라딘에서 중고로 구입했다. 아무래도 여행을 하다보면 책을 캐리어에서 가방으로, 가방에서 어느 테이블로 계속해서 옮겨다닐텐데 그 과정에서 책에는 손상이 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부러 중고로 구입했다. 덕분에 저렴하게 구판을 구매할 수 있었던 것 같다.

 

# 구의 증명 (구판)

오래도록 베스트셀러에 있는 소설로는 알고 있었다. 내용을 직접 찾아본 적도 없어 스포를 당한 적도 없었다. 사실 태국 여행 기간 동안 읽고 다시 중고로 내놓을 생각이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언제고 꺼내어 내가 표시해 둔 그들의 대화를, 장면을 보고 싶어서. 그래서 구의 증명을 보면 태국의 치앙마이가 떠오른다. 치앙마이의 카페가,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넘어가기 위해 기다리던 치앙마이 공항이.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책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부분이 사람들의 불호를 자극하는지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 이 문장이 나의 호기심을 가속화했다. 그 불호의 장면을 있는 그대로 한 번,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사랑을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 번. 총 두 번을 읽었지만 둘 다 마음에 들었다.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것만이 사랑은 아님을 구와 담을 통해 깨닫는다.

 

# 목차

다른 작품과는 다른 구의 증명만의 독특한 점은 담을 빈 동그라미로, 구를 꽉 찬 동그라미로 표시하여 그들의 시점을 보여준다.

 

서로에게 서로가 전부였던 구와 담. 영원히 둘만 존재하고 싶은 아이들. 끝까지 읽고 나니 구의 증명은 성공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 재지 않는 사랑 '. 이 한 마디로 이 책을 표현하고 싶었다. 영영 불행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더라도 그 많은 고통과 슬픔의 순간을 함께 짊어지는 이들이 좋다. 분명 구와 담은 사랑 그이상의 것으로 연결되어 있을 거다.

 

나는 이런 낭만에 젖은 사랑과 삶의 발자취를 보는 것이 좋다. 세상 모든 작가님들이 다양한 사랑을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하다.

 

# 기억에 남는 문장들

보통 마음에 드는 문장, 책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에 표시를 한다. 민망할 정도로 많이 붙였었는데 두 번째 읽으면서 조금 덜어냈다. 필사한 내용을 포스팅에 옮겨본다.

 

P. 67
힘든 일할 때 시간이 빨리 가면 좋잖아.
주저하다가 물었다.
그 속도로 내 삶이 지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좀······ 무서워.
주저하며 구가 대답했다.

P. 121
누가 그걸 모르냐고, 나도 다 안다고, 근데 씨발 아는 대로 살아지지가 않는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말라고 바락바락 악을 쓰며 대거리했다.

P. 128
······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나는 구의 말을 마음으로 따라했다.
구는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안 된다면 이번 생은 빨리 감기로 돌려주세요.
그럼 빨리 죽잖아.
그럼······ 그냥 무로 돌려주세요. 아무것도 아닌 상태, 그래서 모든 것인 상태로.
싫어, 그것도 죽는 거잖아.
죽는 거 아니야. 그냥 좀 담대해지는 거야.

P. 132
명백해졌다. 내가 담을 버렸다. 버려놓고, 보고싶었다고, 그리웠다고, 실은 늘 네 생각 뿐이었다고 무책임한 고백을 하려는 것이었다.
P. 152
이건 사랑이 아니야.
구가 말했다.
뭐든 상관없어.
나는 단호했다.

P. 156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거야.
청설모가 되기 위해 들어온 이곳에서, 구가 말했다.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야.

P. 165
길바닥에 주저않아 구를 끌어안고서 새벽이 오도록 구의 서른 걸음을 상상했다.

P. 166
희망없는 세상에선 살 수 있었지만 너 없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가 않아서. 죽음은 너 없는 세상이고 그래서 나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어.

 

개정판도 소장하고 싶은데 읽고 싶게 만드는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일단은 보류해둔다. 미래의 내가 꼭 살 수 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