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크 쥐스킨트. 엄청난 작품들을 내고도 숨어서 조용히 사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 열린 책들에서 이 작가의 책 8권을 리뉴얼했는데 모든 작품들이 유명하지만 그중 좀머씨 이야기를 가장 먼저 읽게 되었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 번째로 친구와 거제&통영 뚜벅이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무겁고 부피가 나가는 책을 들고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두 번째는 무려 장자크 상페의 삽화가 들어있다는 것이었다.
# 좀머씨 이야기
그리고 예전부터 제목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꼭 읽어보고 싶던 책이기도 했다.
책은 삽화와 옮긴이의 말을 제외하면 100페이지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들은 이런 단편이 많다. 리뉴얼된 8권 중 5권이 좀머씨 이야기와 비슷한 두께를 가지고 있다. 그런 것 치고는 이 얇은 책이 12,000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양장에 패브릭 소재로 되어 있어 소장 가치가 높다고 생각된다. 아깝지 않은 소비였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장자크 상페의 삽화가 있는데 한 두장 있는게 아니다. 나중에 이 책을 볼 사람들을 위해서 몇 장만 이 글에 첨부해두려고 한다. 이 간질간질하고 귀여운, 마치 초점이 잘 맞지 않는 것 같은 그림이 이 책에 너무도 잘 어울렸고 좀머씨 이야기가 더욱 좋아졌다.
# 목차 및 간단 리뷰
단편이라 목차도 없고 이야기가 짧아 줄거리를 말하기도 모호하긴 하다. 그래도 말해보자면 이 책은 좀머씨가 주인공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좀머 씨를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순수하고도 여린, 작은 아이의 눈으로 보는 좀머 씨는 어떤 사람인지. 그래서 이 책에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수식어가 붙은 게 아닌가 싶다.
삽화를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데 좀머씨는 하루 온종일 걸어 다닌다. 그것도 아주 빠른 경보로. 누군가가 불러도 서는 법이 없고, 아내는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을 버느라 바쁜데도 좀머 씨는 새벽같이 일어나 걸어 다닌다. 어마무시한 거리를 하루 만에 걷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지 않고 걷는데 그 걸음이 꽤나 절박하다. 무언가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의문은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라는 배경을 알고 읽게 된다면 단숨에 해소된다.
겨우 100페이지 남짓의 단편에 우울한 좀머씨와 어린 소년의 엉뚱한 순진무구함이 담겨있다. 이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도 너무 궁금해졌다.
# 기억에 남는 문장들
P. 18
눈이 오거나, 진눈깨비가 내리거나 폭풍이 휘몰아치거나, 비가 억수로 오거나, 햇볕이 너무 뜨겁거나, 태풍이 휘몰아치더라도 좀머 아저씨는 줄기차게 걸어 다녔다.
P. 36
「 그러니 제발 나를 좀 그냥 놔두시오! 」
P. 45
생각해 보면 그것은 빗속에 있으면서도 호수의 물을 다 들이켤 수 있을 듯한 갈증을 느끼는 표정 같기도 했다.
P. 86
이 세상 전체가 불공정하고 포악스럽고 비열한 덩어리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니라는 분노에 찬 자각 때문이었다.
···
내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그런 모든 것들에게 의리를 지킬 필요가 무엇이란 말인가?
P. 118 각주
* 좀머 Sommer는 독일어로 <여름>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