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피부는 파랗고 엄마는 베트남 사람이다.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 책의 뒤편에 적힌 소설 일부 발췌다. 발췌를 읽으니 이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져서 읽게 되었다.
# 멜라닌
보기만 해도 시원할 정도로 푸른 책. 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들 중 차별과 폭력, 편견을 자세하게 다루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차별의 중심에 서 있는 파란 피부의 재일이라는 소년의 생애를 보여준다. 우리는 그 소년의 시선을 함께 공유하며 그가 느끼는 공포와 무기력함, 차별과 폭력, 멸시와 혐오를 경험하게 된다.
# 목차 및 간단 리뷰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 재일. 태어날 적부터 파란 피부였던 그를 시어머니는 어머니가 아이에게 정을 붙이지 못하도록 데려가 버린다. 그렇게 태어나서부터 시작된 차별은 늘 재일을 따라다닌다. 파란 피부의 차별이 덜하다는 미국으로 아버지와 단둘이 이민을 가게 되었지만 결국 그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었다. 한국에서는 떵떵거리며 재일을 무시하던 아버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장 낮은 외국인 노동자가 되어버린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는 세상에 대항하는 작지만 단단한 힘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 한 발자국이 채 되지 않더라도 기어이 발을 내딛고야 마는, 패배조차 막을 수 없는 이들에게는 희미한 믿음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재일을 차별하지 않은 베트남인의 어머니와 차별 속에서도 목소리를 높이던 재일의 친구들, 재일을 보호해 주려는 삼촌이 존재하듯이.
# 기억에 남는 문장들
P. 24
이 피부색은 나를 계급의 가장 낮은 단계로 내려보낸다. 다수에 속해 있음이 정상성을 정의하는 세상에서 내 피부는 확연한 비정상이었다.
P. 41
나는 탈출하는 기분이었고, 달아나는 기분이었으며, 동시에 쫓겨나는 기분이었다.
P. 112
" 이 사회가 널 망가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나쁜 아이로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야. "
P. 115
공기처럼 지나가는 경멸과 혐오가 나를 두들겼다. 흉터는 영혼에 남았다.
P. 143 - 144
" 너한테도 적이 생길거야. ··· 모든 사람에게 적이 생기지. 싸울지 달아날지 타협할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와. 네가 원하지 않아도 말이야. 사람들이 네게 적을 지정해 줄 거야. 누구를 공격하면 되는지, 누구에게 맞서야 하는지 알려줄 거라고. 누군가 공격 명령을 내리면 네가 돌격하는 거지. 함께 돌격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야. 하지만 생각해야 해. 고민해야 해. 혼자서는 못 이겨. 가끔은 네가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손을 잡아야 할 때가 있어. 전략적으로 연합해. 필요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는 거야. 누구와 손을 잡을지 누구에게 칼을 겨눌지 생각하면서 움직이란 말이야. 널 괴롭히는 모든 이와 싸우다 보면 네가 먼저 지칠 테니까. "
P. 185
" 차별은 그 시스템의 피해자만 인지할 수 있는 독가스 같은 거니까. 수십 번의 경험이 필요한 게 아니야. 몇 번, 어쩌면 딱 한 번의 끔찍한 경험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폐에 남기는 거야. 그리고 숨을 쉴 때마다 그 기억이 되살아나는거지. 사람들은 그걸 몰라. 차별이 강물처럼 흘러야지만 차별인 줄 안단 말이야. 사실 차별은 곳곳에 놓인 지뢰밭 같은 거야. 딱 한 번의 폭발에도 우린 불구가 된다고. "
P. 195
사람들은 선한 얼굴로 살을 벤다.
P. 209
" 그 자식이 네 자존심을 무너뜨리게 내버려두지 마. <갤러그> 고득점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시간에 힘을 키워. "
P. 277
새벽은 파란색이었다. 파랗게 산란하는 세상 속에 내가 물들어 있었다.
P. 279
내게 날아드는 경멸을 막아줄 한 명이 옆에 있었다면, 나는 그 손을 잡고 춤을 췄을 것이다.
P. 287
내가 싸우고 있는 건 사람이 아니었다. 지정할 수 있는 대상이나 인물이 아니었다. 나는 시스템과 싸워야 했다. 인식에 대항해야 했다. 그런 걸 어떻게 이기나. 주먹을 휘둘러도 닿지 않는 존재를. 말을 해도 듣지 않는, 귀가 없는 존재를.
P. 299 작가의 말
' 존재하는 것이 저항하는 것(To exist is to res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