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결함 _ 예소연 소설집 / 기억에 남는 문장들

나는 언제나 이런 소설이 나오기를 바랐다. 결함을 끌어안은 사랑에 대하여 누군가가 이야기해 주길.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봐 달라는 것은 아니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 것이다. 모두가 틀로 찍어낸 듯 똑같은 게 아닌 이상, 나와 같을 순 없다. 그건 친구, 배우자, 같이 일을 하는 동료, 하물며 가족까지 그렇다는 거다. 다름을 인정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꼭 한 번쯤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로 마음이 다친 사람들도.

 

# 사랑과 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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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렇게 예쁘게 디자인했지? 싶어서 출간되기 전부터 유심히 보고 있었다. 예소연 작가님의 단편소설들을 묶은 책인데 ' 우리 철봉 하자 '는 영화 ' 철봉 하자 우리 '로도 나올 만큼 유명하더라. 이미 나 빼고 다들 알고 있었던 작가님이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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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만으로 여름을 외치는 책. 폰트도 너무 잘 어울린다.

문학동네 유튜브에 들어가보면 사랑과 결함을 읽으면서 들을 수 있게 플레이리스트도 있다. 난 이미 다 읽고 알았지만...

 

# 목차 및 간단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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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의 특성상 모든 소설이 좋을 수는 없다. 나 역시도 그랬다. 그런데 그렇게 좋진 않았던 단편에서도 결함이 있는 사랑이 뚜렷해서 좋은 책으로 기억에 남게 되었다.

 

우리가 흔하게 보게 되는 숭고하고 다감하며, 서로에게 솔직한 사랑과 대조되는 사랑들이 담겨있다. 좋으면서도 싫고, 그러면서도 닮고 싶은 사랑과 그런 사랑에 필연적인 결함. 사실 우리를 이루고 있는 건 이런 사랑들이 아닐까.

 

# 기억에 남는 문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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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25
나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또다른 못 견딜 마음으로 돌려 막고 있었다.

P. 33
너는 너를 돌아봐야 해. 좀처럼 항변할 수 없었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를 돌보려면 나를 돌아보아야 하는데, 나는 나를 돌아보는데 미숙했다. 일은 졸렬하게 하지만,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손쓸 수 없을 만큼 좋아했다. 사랑에 있어서는 늘 나를 함부로 대하고 선을 넘어버렸다.

P. 72
우리는 몇 번이고 다시 서로에게 사랑을 다짐한다. 다짐하고 다짐하면 그것이 종국에는 사랑이 된다고 믿는 사람들처럼.

P. 86
최악의 결말은 존재하지 않고, 늘 최악의 순간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P. 126
나는 나를 싫어하는 애들보다 나처럼 되기 싫어하는 애들을 증오했지만, 결국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전부 나처럼 되기 싫어하는 사람뿐이었다.

P. 149
잠을 오래 자다 보면 고즈넉하게 늙는 기분이 들었다. 남몰래 시간이 흘러가는 그 느낌이 치열하지 않아서 좋았다.

P. 180
" 외로워하시는 것 같아서 그랬어. "
" 네가 평생 그 외로움을 책임질 수는 없잖아. "
" 평생 외로움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만 그 사람을 보살필 수 있니? "

P. 183
내가 아는 것은 고모나 엄마가 그저 나에게 끔찍한 사랑을 흠뻑 물려주었을 뿐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아직도 그 사랑의 정체가 무엇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함이 나를 어떻게 구성했는지도.
P. 214
해나는 그렇게 훼손된 마음으로 쉽게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P. 235
누구의 사랑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한 트럭의 미움 속에서 미미한 사랑을 발견하고도 그것이 전부라고 말하는데.

P. 301
각자의 삶이 달라지는 것은 정말이지 속수무책이었다.

P. 317
내 잘못을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것이 나의 잘못된 습관이라는 걸 미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모든 관계에 귀속된 잘잘못들. 그런 것들을 따지다 보면 내가 혼자 세계를 맴도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걸 온전히 인정하게 되었다.

P. 331
나는 내가 은근히 정선이의 삶이 내 생각대로 나아가길 바라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누구보다 남의 불행을 소비하면서 스스로를 멸시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왜냐하면, 나는 그런 식으로 멋대로 남을 판단하고 그 사람의 최악을 상상하며 내가 사회에서 받은 온갖 모욕을 감수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P. 353 해설(오은교 문화평론가)
아무것도 아니라지만 실은 모든 것이기에 실망과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가 얼마나 많은지.

기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실망도 하고 상처도 받는다. 어쩔 수 없는 일에도 상처는 받듯이. 오늘도 인간의 감정과 관계는 너무도 섬세하고 어려우며 복잡하다는 것을 느낀다.